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거나 바닥에 주저앉는 순간, 부모는 먼저 그 상황을 멈추고 싶어진다. “뚝 그쳐”, “별일도 아닌데 왜 그래” 같은 말이 앞서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그 자리를 잠시 조용하게 만들 뿐, 아이가 자기 마음을 어떻게 다루면 좋은지는 알려 주지 못한다.
감정을 받아준다는 것은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준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 아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말로 옮겨 주는 일에 가깝다. 아이는 그 말을 들으며 자기 상태에 이름을 붙이는 법을 배우고, 다음에는 울음 대신 그 말을 꺼내 볼 수 있게 된다.
이 글에서는 감정을 다루는 부모의 언어를 살펴본다. 아이마다 기질과 표현 방식이 다르므로 아래의 예시는 그대로 외워야 할 문장이라기보다 상황에 맞게 바꾸어 쓸 수 있는 틀에 가깝다.
감정은 아직 말을 찾지 못한 채로 나타난다
어린 아이도 기쁨, 화, 슬픔, 무서움 같은 기본 감정을 이른 시기부터 느낀다. 그러나 그 감정을 알아차리고 가라앉히는 힘은 말과 함께 천천히 자란다. 마음은 이미 크게 움직이는데 그것을 담을 말이 아직 부족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기의 감정은 말보다 몸으로 먼저 나온다. 울고,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눕는 모습은 아이가 잘못 자라고 있다는 신호라기보다 조절을 연습하는 중이라는 표시에 가깝다. 두 돌 무렵부터는 스스로 해보려는 마음이 커지면서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감정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 잦아지기도 한다. 다만 이런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와 정도는 아이마다 다르므로 나이로 정해진 순서처럼 볼 필요는 없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 주는 말
아이가 자기 감정을 다루려면 그 감정을 부를 이름이 필요하다. 부모가 옆에서 붙여 주는 이름이 아이의 첫 감정 어휘가 된다.
“블록이 자꾸 무너져서 답답했구나.” “동생이 먼저 받아서 부러웠구나.”
“~구나”로 끝나는 말은 아이의 상태를 그대로 비춰 준다. 아이는 뒤엉켜 있던 느낌에 답답함, 부러움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운함이나 억울함처럼 자신을 돌아봐야 알 수 있는 감정은 조금 늦게 자리 잡는다. 이런 감정일수록 부모가 먼저 말로 꺼내 주면 아이가 쓸 수 있는 표현이 넓어진다.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물어봐도 좋다. “화가 나면 몸이 뜨거워지지. 지금 그런 느낌이니?”처럼 묻는 말은 아이에게 자기 상태를 살펴볼 시간을 준다.
크기를 재는 말 대신 알아주는 말
아이의 감정에 크기를 매기는 말은 표현을 줄어들게 할 수 있다. “그것도 못 참니”, “별것 아닌 일로 그런다”는 말에는 이 정도 일로 힘들어하면 안 된다는 기준이 담긴다. 이런 말이 반복되면 아이는 힘든 마음을 숨기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같은 상황에서도 아이가 느낀 크기에 맞춰 말할 수 있다. “너한테는 정말 큰일이었구나.” 이 한 문장은 아이의 감정을 확인해 주지만,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는 약속과는 다르다. 마음을 알아주는 것과 모든 행동을 허용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말투도 내용만큼 전해진다. 아이가 흥분해 있을 때는 긴 설명보다 짧고 낮은 목소리가 잘 닿는다. 눈높이를 낮추고 “여기 있어. 다 울고 나서 이야기하자”라고 말한 뒤 기다려 주는 것으로 충분한 때도 있다.
아이가 고를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말
감정이 커지는 순간에는 아무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함께 온다. 그래서 아이가 고를 수 있는 작은 여지를 남겨 두는 말이 도움이 된다.
“빨간 컵에 마실래, 파란 컵에 마실래?” “지금 신발을 신을까, 아니면 문 앞까지 안고 가서 신을까?”
정해진 결론은 그대로 두고 방법만 아이에게 넘기는 방식이다. 아이는 자기 선택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통해 기다리는 힘을 조금씩 기른다. 안 되는 일을 촘촘히 늘리기보다 꼭 필요한 몇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를 아이가 고르게 할 때 부딪히는 횟수도 줄어든다.
말로 옮기는 연습은 부모의 말에서 시작된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몸으로 먼저 표현했을 때, 부모가 그 장면을 말로 바꾸어 들려주면 아이는 다음에 쓸 문장을 얻는다.
“가지고 싶어서 손이 먼저 나갔구나. 다음에는 '나도 하고 싶어'라고 말해 보자.” “싫을 때는 '싫어, 그만해'라고 말해도 돼.”
이런 문장은 한 번에 익혀지지 않는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말로 표현했을 때 “소리 지르지 않고 말해 줘서 잘 알아들었어”처럼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짚어 주면 아이는 다음에도 그 방법을 꺼내 볼 수 있다.
아이는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설명보다 곁에서 보는 모습으로 익힌다. 부모가 자기 감정을 말로 옮기는 장면도 그대로 본보기가 된다. “엄마도 오늘 일이 잘 안 풀려서 마음이 답답했어. 잠깐 물 한 잔 마시고 올게.” 아이는 이런 말을 들으며 감정을 느끼는 일과 그 감정을 다루는 일이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을 본다. 부모도 화가 날 때가 있다. 늘 차분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흔들린 뒤에 다시 돌아오는 모습도 아이에게 남는다는 뜻이다.
부모가 바꿔 볼 수 있는 말
- “뚝 그쳐” 대신 “울어도 괜찮아. 다 울 때까지 옆에 있을게.”
- “왜 그래?” 대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천천히 말해 줄래?”
- “별일도 아닌데 왜 그러니” 대신 “너한테는 큰일이었구나.”
- “화내지 마” 대신 “화가 났구나. 화가 났다고 말로 알려 줘도 돼.”
- “빨리 해” 대신 “지금 할까, 조금 있다가 할까?”
- “너 또 그런다” 대신 “아까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같이 이야기해 보자.”
아이는 한 번의 대화로 감정을 다루는 법을 익히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서 다시 울고, 어제 배운 말을 잊었다가 며칠 뒤에 문득 꺼내 쓰기도 한다.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된 말이었던 것은 아니다. 반복해서 들은 말이 아이 안에 쌓여 어느 날 아이 자신의 말이 된다.
감정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 오래 이어지거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다칠 만한 행동이 함께 나타난다면 살펴볼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잠이나 식사, 최근의 변화처럼 아이를 힘들게 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가정에서의 노력만으로 어려움이 이어질 때는 지역의 아동 상담기관이나 소아·청소년 관련 진료기관에 상의해 볼 수 있다. 도움을 구하는 일은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판정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감정을 다룰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