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 1903∼1989)는 거위 알을 직접 부화기에 넣어 새끼를 키우다 예상치 못한 장면과 마주쳤다. 갓 부화한 거위 새끼들이 어미가 아니라 자신을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이라면 무엇이든 — 사람이든, 공이든, 움직이는 상자든 — 어미로 각인되었다.
각인이란 무엇인가
각인(imprinting)은 생애 초기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 동안 특정 자극에 노출됨으로써 빠르고 지속적으로 형성되는 학습이다. 반복적인 강화가 필요 없고, 한 번 형성되면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학습과 구별된다. 새끼 거위의 경우 부화 직후 수 시간에서 수일이 결정적 시기에 해당하며, 이 시기가 지나면 동일한 자극을 제공해도 각인이 일어나지 않는다.
각인된 대상은 단순한 따라다니기를 넘어, 이후의 사회적 유대와 짝짓기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초기 경험이 이후 발달 전체에 구조적 영향을 준다는 것을 로렌츠는 실험적으로 보여주었다.
결정적 시기의 의미
결정적 시기는 특정 경험이 유독 강한 영향력을 갖는 시간대다. 이 시기에는 신경계가 특정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준비되어 있고, 경험이 뇌 구조 자체에 흔적을 남긴다. 이후에는 같은 자극이 주어져도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로렌츠 이후 연구자들은 인간 발달에서도 유사한 민감기(sensitive period)의 존재를 확인했다. 언어 습득, 시각 발달, 그리고 애착 형성이 대표적이다. 각인처럼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초기일수록 경험의 파급력이 크다.
인간 발달에의 시사점
로렌츠의 각인 이론은 보울비의 애착이론과 함께, 초기 양육 관계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자리 잡았다. 생후 첫 1∼2년 동안 일관되고 반응적인 양육자 관계를 경험한 아이는 이후 정서조절, 자기개념 형성, 타인에 대한 신뢰 전반에서 더 안정된 기반을 갖는다.
입양·위탁·시설 아동에 대한 조기 개입 프로그램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문이 열려 있는 동안, 풍요로운 경험을 채워 주는 일이 교육과 보육의 핵심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