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학습은 설명보다 먼저 장면으로 온다

반두라의 사회학습이론은 사람이 직접 보상이나 처벌을 경험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며 배울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복사가 아니다. 아이는 누가 행동하는지,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함께 살핀다.

그래서 같은 행동도 모든 아이에게 같은 방식으로 남지 않는다. 가까운 어른의 말투, 친구가 갈등을 풀어 가는 방식, 교사가 실수를 다루는 태도는 각각 다른 모델이 된다. 관찰학습은 아이의 내부 과정과 주변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관찰은 네 단계로 움직인다

반두라는 관찰학습을 주의집중, 파지, 재생, 동기의 네 과정으로 설명했다. 이 네 과정은 교과서의 순서표라기보다, 아이가 본 행동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는 조건을 살피는 렌즈에 가깝다.

주의집중 — 무엇을 보고 있는가

아이의 시선은 자신에게 의미가 있거나 정서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더 오래 머문다. 부모와 교사뿐 아니라 또래, 이야기 속 인물, 영상 속 모델도 아이의 관심을 끌 수 있다.

파지 — 본 것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행동은 장면 그대로가 아니라 말과 이미지, 감정의 인상으로 기억된다. “화가 나면 잠깐 멈추고 말한다”처럼 행동의 이유가 언어로 함께 제시되면, 아이가 나중에 그 장면을 떠올릴 가능성이 커진다.

재생 — 기억한 것을 다시 해보는가

본 행동을 그대로 실행하려면 발달 수준과 연습의 기회가 필요하다. 한 번 따라 하지 못했다고 해서 학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는 관찰한 내용을 자기 몸과 언어에 맞게 조금씩 바꾸어 재생한다.

동기 — 그 행동을 선택할 이유가 있는가

행동의 결과를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어떤 결과를 얻는지 보며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칭찬이나 보상만으로 설명하기보다, 그 행동이 관계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부모가 중요하지만, 유일한 모델은 아니다

기존 원고의 “부모가 최고”라는 표현은 관찰학습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힌다. 부모는 아이와 긴 시간을 보내며 중요한 모델이지만, 아이가 배우는 장면은 가정 안에만 있지 않다. 교사의 질문 방식, 친구가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 형제가 실패한 뒤 다시 시도하는 모습도 학습의 재료가 된다.

최근 연구도 모델의 우열을 단순히 정하기보다, 어떤 행동을 어떤 맥락에서 보여 주는지가 중요하다는 쪽에 가깝다. 2025년 부모-자녀 놀이 무작위대조시험에서는 짧은 온라인 모델링 영상을 본 부모 집단에서 10주 뒤 부모-자녀 놀이와 책을 활용한 놀이 빈도가 대조군보다 높았다. 반면 부모의 놀이 태도나 아이의 화면 사용 시간이 모두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교실에서 한 아이가 책을 보며 다른 아이의 설명을 듣는 장면
또래 모델은 정답을 보여 주는 사람이라기보다, 함께 보고 시도하는 장면을 만든다. 사진 · Mikhail Nilov / Pexels

현장에서 모델링을 만든다는 것

아이 앞에서 늘 침착하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잘 안 돼서 잠깐 멈춰 볼게”, “내가 먼저 물어보고 다시 해볼게”처럼 과정과 회복을 보이는 장면이 관찰학습의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

가정과 교실에서는 행동을 대신해 주기보다 생각의 흐름을 드러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어른이 문제를 정의하고, 다른 방법을 떠올리고, 결과를 살피는 과정을 말로 보여 주면 아이는 결과만이 아니라 접근 방식을 관찰한다. 또래가 서로 설명하고 기다리는 장면도 경쟁보다 협력의 모델을 만든다.

이때 모델링은 “그대로 따라 해”라는 명령과 다르다. 같은 장면을 본 아이도 자신의 경험과 기질에 따라 다르게 해석한다. 교육의 역할은 하나의 정답 행동을 주입하는 데 있기보다, 여러 모델을 안전하게 관찰하고 자기 방식으로 시험해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모델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다시 해보는 사람이다

반두라의 관찰학습을 오늘의 교육 장면으로 옮기면 질문이 달라진다. “아이에게 무엇을 시킬까”보다 먼저 “아이는 지금 누구의 어떤 장면을 보고 있는가”를 묻게 된다. 부모·교사·또래가 실수와 조절, 도움 요청과 재시도를 함께 보여 줄 때 아이는 행동의 결과뿐 아니라 삶을 다루는 방식도 관찰한다.

참고한 문헌

Bandura, A. (1977). Social Learning Theory. Prentice-Hall.

Jongpaiboonpatana, P., Jirakran, K., Trairatvorakul, P., & Chonchaiya, W. (2025). Increasing parent–child play frequency via exclusively online, video-based, peer-to-peer modeling program: randomized controlled trial. Pediatric Research, 98, 997–1005. doi.org/10.1038/s41390-025-03800-z

Minkels, C., van der Kamp, J., & Beek, P. J. (2025). Learning the front crawl by observation: Comparing self- and other-models. Human Movement Science, 103, 103398. doi.org/10.1016/j.humov.2025.103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