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 나가 보면 아이들의 하루가 한눈에 보인다. 모래를 퍼 담는 아이, 미끄럼틀 앞에 줄을 선 아이, 술래를 정하느라 목소리가 커지는 아이가 한자리에 있다. 어른의 눈에는 그저 시간을 보내는 모습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아이에게 놀이는 생활이면서 배움이다. 아이는 놀이 안에서 자기 뜻을 말해 보고, 상대의 뜻을 듣고, 그 사이를 맞춰 보는 일을 반복한다. 차례를 지키고 힘을 모으고 화가 난 마음을 가라앉히는 연습이 놀이라는 편안한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이 글에서는 영유아부터 초등 저학년까지의 놀이 장면을 따라가 본다. 아래의 시기 구분은 아이의 발달을 판정하는 기준이 아니라 흔히 만날 수 있는 장면의 예다. 같은 나이라도 아이마다 관심과 속도가 다르다.
혼자 놀던 아이가 옆자리에 앉기 시작한다
돌 무렵에는 혼자 놀이에 빠져 있는 장면이 흔하다. 옆에 다른 아이가 있어도 서로 주고받는 일 없이 각자의 놀이에 빠져 있다. 이 시기에 또래에게 관심을 보이는 방식은 상대의 장난감으로 손을 뻗는 정도다.
두 돌 무렵이 되면 모래놀이터에 나란히 앉아 각자 자기 것을 만드는 모습이 늘어난다. 함께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를 곁눈으로 보고 따라 한다. 이렇게 곁에서 각자 노는 시간은 함께 노는 놀이로 건너가는 다리가 된다.
세 돌을 지나면서 아이는 놀이를 이어가려고 말을 쓰기 시작한다. “내가 물 떠 올게”, “여기까지 쌓고 나서 무너뜨리자” 같은 말이 오간다. 어른이 두 아이를 붙여 놓고 같이 놀라고 재촉하기보다, 옆자리를 마련해 주고 기다리는 편이 낫다.
미끄럼틀 앞에서 줄을 서 보는 일
순서를 기다리는 일은 아이에게 쉽지 않다.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붙들어 두어야 하는데, 어릴수록 그 시간이 훨씬 길게 느껴진다. 보드게임에서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판을 흔드는 아이도 있다.
기다림을 견디기 쉽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네 앞에 두 명 있어. 두 번 타면 네 차례야”처럼 남은 순서를 눈에 보이게 알려주면 아이는 끝이 있다는 것을 안다.
줄을 앞질러 들어간 아이를 나무라기 전에 먼저 규칙을 알고 있었는지 살핀다. 하지 말라는 말보다 “여기 뒤에 서서 기다리자”처럼 지금 할 행동을 알려주는 말이 아이에게 더 잘 닿는다.
가게놀이와 병원놀이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본다
소꿉놀이, 가게놀이, 병원놀이에서 아이는 손님이 되고 의사가 되고 동생을 재우는 어른이 된다. 막대기가 주사기가 되고 블록이 빵이 된다. 역할을 맡으면 그 사람이 할 만한 말투와 행동을 떠올려야 하니, 잠시 자기 자리에서 나와 남의 자리에 서 보게 된다.
“손님, 뭐 드릴까요”, “조금 따끔할 거예요”처럼 놀이에서 나오는 말은 평소보다 길고 풍성하다. 상대의 대답에 맞춰 다음 말을 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무서웠던 일을 놀이로 되풀이하는 아이도 있다. 주사를 맞은 다음 날 인형에게 주사를 놓아 주는 모습이 그렇다. 이는 놀라거나 걱정스러웠던 마음을 아이가 자기 방식으로 다루어 보는 과정이므로, 그만하라고 막기보다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좋다.
술래를 정하는 동안 규칙이 오간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술래잡기처럼 방법과 규칙이 정해진 놀이가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규칙을 그대로만 쓰지 않는다. “여기부터 저 나무까지만 도망가기”, “처음 한 번은 봐주기”처럼 자기들끼리 고쳐 가며 논다.
규칙을 제안하고 다듬고 지키는 과정 자체가 서로의 뜻을 맞추는 연습이다. 놀이가 이어지려면 모두가 받아들일 약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여러 번 해보며 알아 간다.
규칙을 자주 어기는 모습이 보이면, 아직 규칙을 다 이해하지 못했거나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앞선 것일 수 있다. 어른은 잘잘못을 가리기보다 놀이를 잠시 멈추고 약속을 짧게 다시 확인해 준다.
다투고 나서 다시 같이 노는 시간
장난감 하나를 두고 서로 잡아당기다가 울음이 터지는 일은 함께 노는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긴다. 중요한 것은 다툼이 있었느냐보다 그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다.
다툰 순간 아이는 화가 나고 억울하다. 그 마음이 가라앉기 전에는 어떤 제안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 삽을 놓고 싶지 않구나”처럼 지금의 마음을 어른이 말로 얹어 주고, 놀이에서 잠시 떨어져 숨을 고를 시간을 준다. 놀이 안에서 화를 가라앉혀 본 경험은 다음번에도 남는다.
어른이 곧바로 판정하고 물건을 나누어 주면 상황은 빨리 정리된다. 다만 아이는 다음에 쓸 방법을 얻지 못한다. “지금 둘 다 이게 갖고 싶구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물어 아이들이 스스로 방법을 내놓을 시간을 준다.
아이들이 내놓는 방법은 어른이 보기에 어설프다. “내가 열까지 세고 너 줄게” 같은 제안이 나온다. 그래도 자기들이 정한 약속이라 잘 지켜지는 편이다. 억지로 사과하게 하는 것보다 이런 경험이 오래 남는다. 다만 몸을 다치게 하거나 한 아이가 계속 밀리는 상황이라면 놀이를 먼저 멈추고 어른이 자리를 정리한다.
놀이를 통해 사회성을 돕는 방법
- 아이가 시작한 놀이를 어른이 먼저 바꾸지 않고 잠시 따라간다.
- 기다려야 할 때는 남은 순서와 다음 차례를 눈에 보이게 알려준다.
- 역할놀이에서 어른도 한 역할을 맡아 말과 표정을 주고받는다.
- 규칙 있는 놀이는 시작 전에 약속을 짧게 확인하고, 아이들이 고친 규칙도 존중한다.
- 다툼이 생기면 화난 마음을 먼저 말로 알아준 뒤 아이들이 방법을 내놓을 시간을 준다.
- 이긴 결과보다 함께 만든 과정과 주고받은 말을 알아준다.
- 정해진 활동 사이에 아무 계획 없이 놀 수 있는 시간을 남겨 둔다.
놀이에서 자라는 사회성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어제는 장난감을 선뜻 건네던 아이가 오늘은 끌어안고 놓지 않기도 한다. 어른의 몫은 아이가 여러 번 다시 해볼 수 있도록 놀 시간과 함께 놀 상대를 마련해 주는 일에 가깝다.
또래와 어울리기 어려워하는 모습이 여러 달 이어지고 일상에 영향을 준다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혼자 지내기를 좋아하는 성향과는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놀이에 끼고 싶어 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하거나, 놀이 중 다툼이 자주 커지거나, 또래와 노는 일 자체를 힘들어하는 모습이 이어질 때는 어린이집·유치원 교사나 담임교사와 상황을 나누고 아동 상담 전문기관이나 소아청소년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의할 수 있다. 이런 상의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함께 찾아보기 위한 것이다.


